백패킹

선자령 백패킹

수원깨굴 2021. 1. 28. 13:27

선자령 1일차

오늘은 선자령으로 동계백패킹을 가는 날이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겼다. 예상기온이 영하3~5도 이고,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 패딩과 우의까지 챙겼다. 물을 제외한 모든 준비물을 패킹하고 배낭 무게를 재보니 18.5kg이다. 그래도 20키로는 안넘었지만 식수를 사서 넣으면 20키로는 넘을 것 같다.

  11:40에 출발했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일주 상습 정체구간을 제외하고는 원활했다. 평창휴게소를 지나니 구름이 많고 안개가 자욱하다. 횡계에 도착하니 2:30. 시내 오삼불고기 집을 검색해 점심을 시켰다. 혼자라고 하니 1인분은 안된다해 2인분을 시켜 먹고 남은 것은 포장을 했다. 아무래도 안개가 많아 날이 일찍 저물 것 같아 좀 서둘러 올라가야 했다. 구대관령 상행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쌀가루 같은 눈이 오기 시작한다. 등산로 입구에 119구조대 차량이 서있어 혹시 통제하는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안개속에 어렴풋이 백패킹 배낭을 멘 패커들이 오르는게 보인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하고 출발하니 15:30.
  하산중인 등산객이 백패킹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이 올라 갔다고, 자리 잡기도 힘들 것 같다고 하니 맘이 더 바빠진다. 기존에 쌓였던 눈은 대부분 녹은 것 같고 이번에 온 눈들이 4~5센치 정도 쌓여 있었다. 쉬지 않고걸음을 재촉해 현지에 도착하니 16:40. 한시간 10분 정도 걸린 것같다. 뒤통수에 땀이 흐른다. 이미 많이 텐트가 쳐져있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에 우선 텐트부터 설치했다. 눈이 계속 오고 있어서 달리 할일도 없다. 워낙 바람이 유명한 사이트라 팩을 단단히 박고, 이중으로 결박을 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동계 백패킹이라 매트도 에어매트를 깔고 그위에 발포매트를 이중으로 깔았다. 대충 텐트 내부까지 정리를 하고 나와보니 벌써 어둑어둑 해진다. 아직도 올라오는 패커들이 있고 그사이 텐트도 점점 늘어난다. 더군다나 안개와 눈 때문에 시야가 30~30미터 밖에 안나온다. 50여 미터 떨어진 풍력 발전기의 풍차도 보이질 않는다.
  점심을 늦게 먹어 배가 고프진 않지만 달리 할일도 없어 포장해온 오삼불고기를 데워서 한잔하려고 준비하다보니, '이런, 마할~' 식수를 사가지고 왔어야 하는데 급한마음에 서두르다 그냥 올라 왔으니 식수가 하나도 없다. 다행히 혹시 물이 모자라면 눈을 녹여 쓰려고 커피 여과지를 가져 왔었다. 코펠에 눈을 가득 담아 버너로 녹이고 끓여서 여과지로 필요한 만큼씩 여과해 식수를 조금이나마 확보했다.

눈을 녹여 여과지로 걸러 식수 확보 중

  오삼불고기를 덥히는데 이프로에게 전화가 왔다. 백패킹 단톡방에 난리가 났단다. 연락도 없고 전화도 안받는다고, 영동지방 대설경보가 내려졌다며 걱정이 태산이란다. 사정을 얘기하고 그럴 여유가 아직 없었다고 설명하고 통화 끝난 후 톡방에 소식을 전했다. 소주는 팩소주 4개를 가져왔다. 안주를 덥혀 두 팩을 마시고 빈팩에 녹여 놓은 식수를 담았다. 물을 받아놓을 통 마져도 없어서다. 잠시 쉬면서 야간 텐풍을 몇장 찍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눈 위에 냉장 중
점심 먹고 남겨 온 오삼불고기

  눈은 여전히 내리지만 기온은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아 추위는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고, 텐트 안은 영상 1~2도 정도다. 밤새 눈이 얼마나 올지가 좀 신경 쓰일 뿐 추위 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다.
잠깐 나가 소변을 보고 주위를 둘러 본 후 코펠에 눈을 다시 한가득 퍼다 식수를 더 만들었다.
2차로 집에서 가져간 곱창볶음을 만들었다. 곱창만 먹기는 느끼할 것 같아 김치를 추가해 볶아주니 맛이 더 풍부해진다. 남은 소주를 마져 마시고 빈팩에 물을 채웠다. 네팩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하나 남은 캔맥주를 마시고 캔에도 물을 채웠다. 텐트안에 두면 건드려 쓰러지면서 쏟아질 것 같아 텐트 밖에 놓고 핫팩을 4개 터트려 이너침낭 발끝에 두개, 중간에 두개를 넣고 잠자리에 들었다. 바람 소리에 잠이 쉽게 들지 않아 폰으로 영화를 한편보다 눈이 감겨 그대로 잤다.

김치를 더한 곱창볶음은 술을 부른다~

선자령 2일차

  늘 깨는 시간이 되니 눈이 떠진다. 5:40분이다. 밖은 조용하다. 눈이 내리는 건지, 얼마나 쌓였을라나, 바람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풍차 돌아가는 소리도 안들린다. 텐트 후라이를 손으로 톡톡 쳐보니 눈이 많이 쌓인 것 같지는 않다. 지퍼를 살짝 내리고 내다보니 눈은 그친 것 같다. 아직 어두운데다 안개가 껴있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밤새 추가로 내린 눈은 2~3센치 밖에 안되는 것 같다. 볼일보고 딱히 할일이 없어 다시 누웠다. 비몽사몽 하다 옆동에 떠드는 소리에 일어났다. 어제보던 영화를 마져보다 날이 훤해지는 것 같아 나왔다.

온통 얼어 버렸다

  벌써 한분이 짐을 다 챙기고 출발 전에 담배 한대 꼬실르고 있다. 어디서 오셨냐니 수원서 왔단다.
"헐~ 저두 수원서 왔어요, 권선동 아이파크시티"
본인은 인계동에서 왔단다. 연배도 비슷해 보이는데 이분도 혼자서 왔단다. 왜 벌써 걷었냐니까 바람에 폴대가 부러져 일찍 철수 한단다. 원래 집사람이랑 같이 다니는데 겨울이라 혼자 왔단다. 이얘기 저얘기 하다 가입되어 활동중인 카페를 알려줘 가입하기로 하고 날풀리면 같이 다니자는 약속을 하고 먼저 내려가셨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건지, 여기서 수원분을 만나다니. 가기 전에 물 남은 거 있으면 달라니 조금 남았다며 물통 두개에 남아있는 물을 모아 주셔서 식수를 추가 확보했다.
  얻은 식수로 라면에 어묵을 넣어 아침을 해 먹었다.

역쉬 해장엔 어묵라면이지~ (고추가루를 깜박했네)

텐트 문을 열어놓고 밥 먹는 동안에 밖을 보니 순간 해가 비춘다. 하늘이 잠깐 열린 모양이다. 밥 먹다 말고 튀어 나가 사진을 좀 찍었다. 30분 정도 해가 나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듯 또 안개가 몰려와 하늘을 가려 버린다. 이후 하산 할때까지 해가 안나왔다. 이런 날씨엔 순간에 선택이 중요하다. 지나가면 다시 볼수없는 광경들이 순간적으로 나타난다.

  불어터진 아침을 마져먹고 짐을 챙겼다. 가끔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 자세히 보니 풍력발전기 날개에 얼어 붙은 얼음이 녹으면서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사람이 맞으면 크게 다칠 정도로 크다. 가동 전에 풍차를 천천히 돌리며 얼음이 자연스레 떨어지도록 하는 것 같다.
  정상을 다녀올까 하다 어차피 구름 때문에 아무것도 안보일 것 같아 그냥 하산하기로 했다. 이미 거의 대부분들 철수를 하고 뒤를 이어 등산객들이 몰려와 여기저기 자리를 잡는다. 점심 먹을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내려오는데 상고대는 이미 녹아 대부분 떨어져 버렸다. 날씨가 추우면 내려오는 길에 상고대도 많이 봤을텐데, 좀더 서둘러 일찍 내려올걸 그랬다. 하산길 중간에 전망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능선에 걸쳐진 운무를 보고 하산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12:40. 내려오는 내내 목이 말라 물이 급하게 필요했다. 오자마자 포카리스웨트를 사서 단숨에 마시니 갈증이 가신다. 예비로 콜라를 한병 더 사서 출발했다. 속초항을 들릴까 했는데 속초쪽은 눈이 많이 온다해 그냥 집으로 향했다. 눈소식 때문에 행락객이 많이 안움직였는지 고속도로는 한가하다.
  수원 도착하니 15:10. 오늘 금사모 정모를 우리집에서 하기로 했다해 집에 들어가는 길에 농수산물 센터에 들러 대방어회를 떠왔다. 수룡씨네가 어디서 낚시로 잡은 참돔을 얻어 왔단다. 회먹고 참돔 매운탕에 뒷풀이 아닌 뒷풀이 까지 한 셈이다.
  다들가고 나서 장비들을 대충 마르도록 널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처음 경험해 본 동계 백패킹 치고는 날씨가 도와줘 수월하게 끝냈다. 이제 대충 견적이 나오니 더 추운날도 도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