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의 길 10일차
ㅇ 일시:2022.01.22 토 맑음(최저2/최고15)
ㅇ 구간:Merida-Aljucen(16.2/44,922보)
ㅇ 숙소:Hotal Eneritae(메리다)
어젯밤에 일정 협의를 다시 가졌다. 한 분이 가정사로 조기 귀국하시면서 사기가 꺽인데다 아픈 사람 까지 생기고, 멈춰 있는 메리다에서 앞뒤로 3개 코스에 문 연 숙소가 없으니 더이상 진행이 어렵겠다는 얘기가 오갔다. 내일 2개구간을 걸어야 하는데 두 군데 모두 숙소가 없다. 다시 돌아와야 해 숙소를 하루 연장하고 내일 다시 생각해 보자 했는데 아무래도 번복은 힘들 것 같다.
배낭을 숙소에 두고 가벼운 가방만 메고 걸었다. 오늘이 마지막 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 도로를 따라 걷는 길로 시작한다.





해가 뜰 무렵에 메리다에 물을 공급했던 Lake Proserpina 저수지에 도착했다. 수천년 전에 축조된 저수지가 아직도 건재하게 이용되고 있다.






늘 그랬듯이 길가에서 간식을 먹고 메리다를 벗어 나면서 숲속 길로 접어든다






목적지 전 마을에 도착하니 지어진지 얼마 안된듯한 무니시팔이 보인다. 들어가 보니 화장실은 개방되어 있지만 운영은 안해 잠겨있다.

더 이상 걷는다는게 무의미 한지 몸을 추스르고 나온 일행이 지나가는 동네 할아버지에게 택시를 불러줄 수 있는지 여쭤보니 전화를 해 주시며 15분 정도 기다리면 택시가 올 거라고 한다. 기다리는 15분 동안 온갖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다. 잠시 후 택시가 도착했지만 세분은 택시로 보내고 나는 뒤돌아 오던 길을 다시 걸었다. 걷는 내내 출발하면서 응원 해 주셨던 분들과 가족들, 친구들, 이곳을 오기 위해 사직한 직장 동료들, 그리고 하루하루 후기를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카페 회원님들. 무슨 면목으로 얼굴을 볼수 있을까. 언제 또 이 길에 설수 있을까. 이게 최선의 방법 인건지. 다른 대안은 뭐가 있을까. 잠시 길가에 철퍼덕 주저앉아 마음을 추스르고 주위 풍경을 주어 담는다. 이제 가면 다시 못 볼 아름다운 풍경들.



숙소에 돌아오니 걱정들을 했는지 여러 대안들을 제시한다. 나는 이곳 일정이 끝나면 귀국하지 않고 발칸반도 여행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들어가면 격리 후 다시 나와야 하고 일정 변경에 따른 위약금도 지불해야 한다. 예정대로 끝날 날짜 까지는 30일 정도가 남았다. 그 정도 일정이면 프랑스길을 걸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협의 끝에 프랑스 길로 바꿔서 마져 걷고 기존 일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두 분은 조기 귀국을 택했고, 나와 대구에서 온 동생은 나와 같이 프랑스길을 걷기로 했다.
마지막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식당에서 25살 한국 친구를 만났다. 혼자서 은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이곳 사정을 얘기하고 프랑스 길로 옴길 것을 제안하고 귀국하는 분들의 물건 중 필요한 것을 나눠줬다. 그 친구는 내일 레온을 거쳐 론세스바예스로 이동해 걷기로 했다. 우리는 내일 마드리드를 거쳐 팜플로나로 이동해 프랑스 길을 걷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