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일시 : 2021.06.12(토)

ㅇ 날씨 : 맑음

ㅇ 구간 : 미황사-달마산-관음봉-큰바람재-관음암터-문수암터-노지랑골-도시랑골-몰리고재-너덜-미황사(20.8km/9시간)

ㅇ 동행 : 깨굴, 아내

 

  오늘은 우리나라 땅끝마을인 해남의 달마고도길을 아내와 함께 무박으로 가는 날이다. 아내는 처음으로 가는 무박산행이다. 달마고도는 해남의 아름다운 절 미황사가 있는 달마산의 주 능선을 아우르는 17.74km 둘레길로, 달마산에 전해 오는 옛 12개 암자를 잇는 순례 코스다. 과거 선인들이 걷던 옛길을 장비를 이용하지 않고 순수 인력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금요일 퇴근 후 짐을 챙기고 잠깐 쉬다 출발하여 신갈 공용주차장에 파킹하고 신갈 고속도로버스정류장에서 12:20분에 좋은사람들 버스를 탑승했다. 이번 투어에는 28인승 2대가 함께 간다. 우리가 마지막 탑승자라 바로 불을 끄고 취침에 들어갔다. 3시쯤 함양휴게소에 정차 할때까지 잔것 같다. 잠시 내려 화장실을 다녀온후 다시 출발, 4:40분에 미황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직 어두웠지만 헤드랜턴 없이도 갈 정도로 여명이 느껴진다. 

  이번 투어는 A, B 2개조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A조는 달마고도길(17.74km)를, B조는 미황사에서 달마산-관음봉을 거친 후 큰바람재에서 달마고도길과 만나 나머지길(20.8km/9시간)을 걷는다. 출발 전에 나는 B코스를, 아내는 A코스를 걷고 첫번째 스탬프를 찍는 관음암터에서 만나 나머지 구간을 같이 걷기로 했었다. 그런데 주차장 도착 직전에 조편성을 하는데, A코스 인원이 버스 2대에 4명 밖에 안된다고 한다. 해서 아내도 그냥 B코스를 가겠다고해 그렇게 출발했다. 여기서 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몇개 산을 같이 다니면서 걷는게 괜찮아 보였고, 달마산이 해발 489m로 그리 높은 산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겠다 생각했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40여분을 오르는데 이미 해가 떳는지 파란 하늘이 보이는 전망대 같은 곳에 도착했다. 우리가 오르는 곳이 북서쪽이라 해는 볼수 없었지만 남쪽 방향엔 햇살이 살짝 드리운다. 앞에 내려다 보이는 곳은 모두 구름에 덮혀 멀리 구름위로 보이는 봉우리 하나만 보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휴식 후 다시 20여분을 오르니 달마산 정상인 불썬봉이다. 05:58 정상에 오르니 동쪽에 떠오른 해가 보인다. 이미 한뼘 정도는 올라온듯 하지만 일출의 여운은 아직 남아있다. 달마산 줄기가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데 산맥 넘어에는 운무가 하나도 없고 우리가 올라온 북서 방향만 운무가 깔려있어 산맥을 중심으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북쪽 방향의 운무가 능선을 넘어 남쪽 방향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컵라면과 바람떡, 사과 반개로 아침을 해결하고 관음봉 방향으로 능선을 탔다. 6:40 산은 높지 않지만 능선을 타는 등산로는 대부분 바위길이라 걸음이 느려지고 오르내림이 잦아 은근히 체력소모가 많다. 금방 관음봉에 오를줄 알았는데 은근이 거리도 멀고 바위능선을 넘어가는게 쉽지 않았다. 간간히 보이는 산벚을 따먹으며 여유있게 넘는다.

  관음봉을 찍고 하산해 달마고도길로 접어드니 벌써 08:20.  3:20분 정도는 이곳에 소비한 셈이다. 남은 시간이 5시간 20분. 마음이 조급해 진다. 아내는 벌써 지친듯 한데 이곳에서 돌아 갈수도 없고, 가능한 최대로 속력을 내보기로 한다. 첫스탬프 찍는 관음암터에 도착하니 8:40. 몇몇 분들이 지나쳐 간다. 하나 같이 배낭에 "2M 유지" 라는 표식을 달고 걷는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이곳에 대한 사전정보를 얻으려 해남군청 홈피에 들어갔다 "혼산족을 위한 달마고도 걷기행사"가 있고, 오늘 그행사가 있는 날이라 길에서 같이 겹치겠구나 생각을 한적이 있는데 그분들인 것 같다.

한분과 잠깐 같이 걷게되서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오늘 100명 모집 예정이였는데 50~60명 정도 참석 했다고 한다. 곳곳에 큰바위들이 깔려있는 너덜길이 있었지만 양탄자 깔듯 잘 정비를 해놔 걷는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가던길에 뒤돌아서 이 사진을 찍은 이후 아내가 급격하게 힘들어 한다. 준비해간 식수도 거의 떨어져 간다.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마음은 늦을 것 같아 급했지만 힘들어 하는 아내 때문에 내색 안하고 아내을 앞세워 그 보조에 맞춰 출발한다. 이제 2코스 지났는데 걱정이다. 다행히 세번째 스탬프 있는 곳에서 계곡물을 만났다. 산속에서 나오는 물이라 물은 엄청 깨끗하고 시원했다. 물맛도 아주 좋았다. 목을 축이고 두개의 물병을 가득 채워 출발했다. 네번째 도시랑골을 지나 다섯번째 몰고리재를 도착하니 더 이상 못가겠단다. 여기서 탈출하면 안되겠냐고 한다. 나도 이곳 지리를 모르는데다 탈출한다해도 주변에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을이 보여도 집 몇채씩 있는 농가가 산 아래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 거기를 찾아 가느니 그냥 늦어도 이길을 가는게 맞을 것 같아 가는데 까지 가보자고 했다. 느긋하게 쉬게 하면서 점심을 먹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이 채 안된다. 땀을 비오듯 흘리는데다 어지럽다해 탈수증이라도 생길까 걱정돼 삶은계란을 먹기 위해 가져간 소금을 같이 먹였다. 쉬면서 점심을 먹고 나더니 좀 나아진듯 빨리 가자고 한다. 빈몸으로 가면 좀 나을 것 같아 아내 배낭 까지 메고 출발했다.

  사실 아내는 3일전인 6.9일 코로나19 백신접종을 받았다. 접종 후 무리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아 취소하는게 어떻겠냐 했는데 멀쩡하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혹 그 후유증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4키로 정도 남은 곳에서 길을 잘못 들어선것 같았다. 아까 이정표에 윗쪽으로 언덕을 올라가는 곳을 지나쳤는데, 트랭글에 따라가기를 하고있는 코스가 그곳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뒤돌아서 조금 올라가야겠다고 했더니 더 이상 못가겠다며 길위에 눕는다. 여기서 그만 포기를 해야하나.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아직 시간은 50분 정도 남았지만 이 상태로는 그 시간안에 도착하기는 이미 틀렸으니 이쯤에서 포기하고 쉬다가 천천히 이 길을 마무리 하고, 근처에서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올라 가던지, 아니면 하룻밤 자고 내일 천천히 올라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누워 쉬게 하면서 남은 소금을 물과 함께 마시게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리가 가던 방향에서 두사람이 오다가 2백여미터 앞에서 쉬고 계셨다. 잠시 기다리라 하고 달려가 물어보니 이길로 계속가면 된다고 한다. 와, 오늘의 천사같은 두분이였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와서 얘기하니 일어나 그럼 가는데 까지 가보잖다. 조금지나니 마지막 스탬프를 찍는 너덜길에 도착했다. 남은 시간은 40분이 좀 안되고, 거리는 3키로 정도다. 산행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 상태를 얘기하고 20~30 정도 늦을 것 같으니 기다려줄수 있냐고 하니 자기도 이곳에 사정을 얘기해 볼테니 최대한 안전하게 오시라고 한다. 아내에게 얘기를 하고 30분안에 도착 못하면 차 보낼테니 가는데 까지 가보자고 했다. 더 재촉하지 않고 힘들면 쉬고, 그러다 걷고, 쉬고 걷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니 눈앞에 사찰이 보인다. 마침 산행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쯤이냐고. 우측으로 사찰이 보인다고 했더니 그 절은 미황사가 아니고 조금 더 내려와야 미황사가 나온다며 거의 다 왔다고 힘내라 하신다. 사찰이 눈에 보이면서 아내도 마지막 힘을 내본다. 방금 남은 마지막 물까지 모두 마셨다. 우여곡절 끝에 주차장에 도착하니 대장님이 길앞까지 나와 기다리신다. 시간은 14:25.  25분 늦었다. 다행히 30분 안에 들어왔다. 물부터 찾아 버스안에 시원을 물을 마시게 하고 차안에서 기다려 주신 모든분들께 사과드리고 출발했다. 스탬프북을 미황사 종무소에 제출해야 완주증을 받는데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사찰을 들릴 여유가 없어 그냥 왔다. 산행대장이 월요일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달마고도길은 참 많은걸 느끼게 하는 산행이였다. 그렇게 산행을 많이 했어도 이번처럼 어려운 산행은 처음이다.그동안은 아내도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같이 산행하기가 어려워 대부분 혼자 다녔다. 그래서 이런 어려움을 몰랐던 것 같다. 오늘의 모든 문제는 모두 나 때문이였다.

  첫째는 달마고도길만 걸었다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거다. 거리 17.74km에 보통사람들이 7시간 안에는 모두 들어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9시간을 줬으니 충분하고도 남았다. 산행 시작하기전 산행대장이 너무 일찍와도 근처에 식사할 곳도 없고 편의점 같은 것도 없으니 천천히 즐기면서 내려오라고 까지 했을 정도다.

  둘째는 내 욕심 때문에 아내를 힘들게 했다. 아내 몸상태나 산행 능력을 과대평가해 달마산 산행을 결정한게 실수였다. 그냥 달마고도길만 걸었으면 얼마나 여유있게 즐기면서 걸었을까, 아쉬움이 크다. 

  셋째는 아내가 무박산행을 처음한다는 거였다. 버스 탑승한 신갈에서 미황사 주차장 까지는 5시간 정도 걸리는데 차안에서 자면 되겠다 싶었는데 아내는 거의 한숨도 못잤다고 한다.  처음이니 당연히 그럴수도 있다는걸 간과했다.

  많이 반성하고 아내에게 미안하다. 앞으로 절대 무리한 산행은 자제해야 할테고, 특히나 아내와의 동행은 아내가 감당할수 있는 산행지로만 제한해야겠다. 나이 들수록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도 욕심을 못버리고 있는 것 같다. 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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