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재에서 출발하여 헤드랜턴 빛에 의지한 야간산행을 시작했다. 처음 해 보는 야간 산행이여선지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론 주위를 볼수없어 답답하기도 했지만 주간 산행보다 힘은 훨씬 덜드는것 같았다. 가끔씩 고개들어 쏟아질듯 가득한 별들을 봐가며 한시간 정도 오르니 노고단(1507M)에 도착.
23년만에 오르는 노고단이라 감회가 새로웠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낮설기만 했다. 1985년 봄, 철쭉꽃 축제 기간에 집사람과 결혼하기전 이곳엘 같이 와본적이 있었다. 산행을 거의 안해보다가 시도한 산행이라 엄청 고생했던 기억만 난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 한시 방향으로 검은 자태만 드러난 반야봉이 보인다. 숲길을 앞만보고 걸어가니 방향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눈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바닥만 보고 마냥걸었다. 돼지령(1424), 임걸령(1320)과 노루목(1550) 삼도봉에 도착하니 5시 45분.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며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삼도봉은 경남, 전남,전북의 3도의 경계선이라 하여 삼도봉이라 칭한다고 한다. 예전에 낫의 날과 같이 생겼다 하여 낫날봉이라 부르다가 국립공원에서 삼도 이정표를 세우면서 삼도봉으로 바꿨다고 한다. 6시 6분경에 해가 뜬다고 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해돋이를 기다렸다. 동쪽하늘이 온통 붉은 빛으로 변하더니 드디어 연하봉 쪽으로 붉은해가 떠오른다. 지리산 천황봉에서의 해돋이는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수 있다던데, 내일 날씨가 어떨지 모르니 오늘 미리 봐놔야 후회를 안할것 같아 맘껏 감상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해가 떠오르면서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피아골의 깊은 계곡과 끝없이 펼쳐진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 그리고 골짜기 사이사이로 간간이 내려앉은 안개가 등골을 송연하게 만든다.
기념 촬영을 마치고 다시 출발. 서서히 배가 고파온다. 각자 챙긴 행동식으로 요기를 하며 묵묵히 걷는다. 가장 산행 경험이 많은 분이 선두에 서고, 그다음 분이 후미를 맡고 나머지는 가운데에 서서 대열을 이뤘다. 날이 밝아 헤드랜턴을 접고 햇빛을 막기 위해 모자를 눌러 썼다. 30여분간 내리막길을 지나니 제법 넓은 공원같은 뜰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화개재라고 한다. 조영남이 부르는 화개장터로 가는 고개길로, 경남 하동과 전북 남원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물물교환을 했다고 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 버티고 서있다. 한시간여를 오르니 토끼봉(1533). 좌측으로 그 유명한 뱀사골 계곡이 깊게 내려다 보인다. 명선봉(1586)을 지나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아침을 먹기로 한 연하천대피소가 우리를 반긴다.
08:50. 대피소에서 숙박한 사람들인지 10여명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드디어 지리산에서의 첫번째 식사시간. 아침은 각자 준비하기로 했기 때문에 따뜻한 국물을 위해 라면부터 끓였다. 밥보다 라면이 너무 맛있다. 라면을 5개나 끓여 싸가지고온 밥을 말아 맛난 아침을 먹는다. 빠질수 없는 반주는 선두에서 걷던 대장이 가져온 복분자주로 목을 축였다.
이제까지 산행을 많이 했어도 취사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요즘은 어느 산을 가든 산에서의 취사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아예 생각조차 않지만 아쉬운대로 보온병에 뜨거운물을 가져가 컵라면이라도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데, 오늘은 공식적으로 버너에 코펠에 취사도구를 이용해 아침을 해결하고 보니 너무 새로운 느낌이고 힘이 절로 솟는다.
구례에서 해장국을 생략해 시간에 여유가 생겨 여유있는 아침을 먹고 09:30에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왼쪽 무룹에 이상 신호가 오는듯해 무룹보호대를 했다. 점심은 선비샘에서 먹기로 하고 가파른 삼각봉(1586)을 향해 힘든 발걸음을 옴겼다. 밥을 먹고 나선지 걸음이 더 무거운데다 오르막이라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다. 그렇게 많이 힘든줄은 모르겠다. 걱정했던 오른쪽 다리도 거뜬하다. 그나마 평상시에 조금씩이나마 등산과 걷기 운동을 한 효과가 있는가 보다.
삼각봉, 형제봉에 이르니 커다란 바위가 앞을 막아 선다. 이곳이 형제봉이라 하는데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바위옆으로 깊은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이 지리산에서 가장 시원하다는 어름골이라고 한다. 계곡 아래에서 골사이를 타고 올라오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 잠시 땀을 식히며 기념사진을 찍어본다.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11:00.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옴긴다. 이제 조금씩 발바닥이 아파온다. 지루한 낮은 오르막길을 한시간넘게 걸어 점심을 먹기로 한 선비샘에 도착했다. 지리산에서 가장 물맛이 좋은 샘이란다. 예전엔 주위에 무덤이 있었다고 하는데, 돌무더기 사이로 나오는 샘물이 정말 차고 맛있다. 아침은 늦게 먹어 점심 먹을 생각이 나들 없단다. 간단히 과일과 떡을 나눠 먹고, 휴식을 취해본다. 양치질도 하고, 세수도 하고, 머리에 물을 쏟아 붓고 나니 피로가 싹 가시는듯 하다. 신발과 양말도 벗고 발도 닦고나니 한숨 자고싶은 마음뿐이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문제가 한가지 생겼다. 평택에서 혼자 와 구례에서 택시를 같이 타고왔던 군인아저씨가 여태까지 같이 동행을 했었는데 아직 나타나질 않는거였다. 맨뒤에 섰던 직원 얘기가 중간에 발을 삐끗하여 뒤로 쳐졌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동행을 했으니 그것도 인연인데 나몰라라 할수가 없어 응근히 걱정을 하고 있는데 거의 30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왼쪽다리를 절고 있었다. 통증이 심한지 걸음을 옴길때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배낭에 남아 있던 무룹보호대 한개를 빌려주고, 옆 동료가 지팡이를 빌려줬다. 등반대장은 지나가는 등산객마다 물어 겨우 진통제 두알을 얻어 먹이고 같이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로 바닥이 거의 돌이라 가뜩이나 힘든데 무룹을 삐끗했으니 제대로 걸을리가 없었다. 세명을 앞으로 보내고 지리산 산행을 권유했던 회원과 둘이 뒤에 남아 군바리를 앞세우고 산행을 계속했다.
7개의 암봉이 능선위에 모여있어 마치 일곱 선녀가 노는것 같다하여 붙여졌다는 칠선봉(1558)을 지나니 끝이 안보이는 계단길이 깍아 지른듯한 바위사이를 감돌고 올려다 보인다. 모자챙으로 땀이 줄지어 떨어진다. 허벅지도 딴딴해지며 걸음이 제대로 옴겨지질 않는다. 더군다나 환자를 앞세우고 가니 제대로 걸음을 옴기기가 어려워 두배이상 힘이 드는것 같다. 물론 시간도 한없이 지체된다. 그렇다고 나몰라라 하고 먼저 갈수도 없는 상황이라 어쩔수없이 그렇게 어려운 산행은 계속됐다. 그나마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군바리 얼굴을 보면 군에 가 있는 아들 생각에 의무감 같은 것도 느껴지곤 한다. 깔딱고개를 넘어서니 그곳이 영신봉(1652)이란다. 반야봉 낙조와 더불어 지리산 십경중 하나인 영신봉 낙조가 그렇게 일품이라는데 아직 낙조를 볼 시간은 안되고, 암반으로 형성된 급경사를 내려서니 반가운 세석대피소가 보인다. 시간은 15:40. 한시간 정도가 더 걸린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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